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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31 Quadro di canonizzazione di card. John Henry Newman (CBCEW/Marcin Mazur) 2025.07.31 Quadro di canonizzazione di card. John Henry Newman (CBCEW/Marcin Mazur) 

성 존 헨리 뉴먼 추기경, 교회 학자로 선포된다

교황청 공보실의 발표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교황청 시성부 소속 추기경과 주교 총회 의견을 승인한 후, 19세기 성인 존 헨리 뉴먼 추기경에게 교회 학자 칭호를 곧 수여할 예정이다.

Alessandro De Carolis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현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19세기 교회와 에큐메니즘에 영향을 미친 영적이고 인간적인 여정의 주인공이며, 신앙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매일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임을 보여주는 성찰과 글을 쓴 저자이다. 2019년 시성식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 복음을 향한 에너지와 열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영국 출신 성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이 곧 교회 학자로 선포될 예정이다.

7월 31일 교황청 공보실은 성명을 통해 이 소식을 전했다. 성명에 따르면 교황청 시성부 장관 마르첼로 세메라로 추기경의 예방을 받은 레오 14세 교황은 “세메라로 추기경이 존 헨리 뉴먼 성인에게 곧 수여될 보편 교회의 학자 칭호에 대해 시성부 소속 추기경과 주교들로 구성된 총회기에서 긍정적인 의견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림자와 형상에서 진리로”

“자애로운 빛이여, 저를 인도하소서. 이 암울한 세상 한복판에서 저를 인도하소서. 밤은 깊은데 저는 집에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저를 인도하소서. (…) 당신의 힘이 저를 이끌어 오셨으니 앞으로도 밤이 끝나고 밝은 아침에 웃는 얼굴을 보게 될 때까지 황무지와 늪지대를 넘어 저를 인도하실 줄 믿나이다.” 1801년에 태어난 존 헨리 뉴먼 성인은 32세 때 긴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가던 중 이 가슴 뭉클한 기도가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는 이미 8년째 영국 성공회 사제로 활동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영국 성공회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설교와 글 모두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었다.

1832년 이탈리아 여행은 내적 탐구를 더욱 심화시켰다. 존 헨리 뉴먼 성인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빛”의 심오함을 알고자 하는 내적 갈증을 느꼈다. 그 빛은 성인에게 진리의 빛이기도 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 교회에 대한 참된 본질에 대한 진리, 교부들이 아직 분열되지 않은 교회에 설교했던 초창기의 전통에 대한 진리다. 신앙을 전파한 중심지이자 미래의 성인이 살고 활동했던 옥스포드는 그의 신념이 점차 가톨릭 신앙으로 향하는 길이 됐다. 뉴먼 성인은 1845년 『(그리스도교) 교리 발전에 대한 논고』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그 빛을 자신에게 가져다 준 영적인 길을 요약했다. 곧 당시의 가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심에서 비롯된 교회, 순교자들의 교회, 고대 교부들의 교회며, 역사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 온 나무와 같다고 것이다. 그 이후에 성인은 가톨릭 신자가 되고자 했고, 1845년 10월 8일에 개종했다. 뉴먼 성인은 나중에 그 순간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저에게는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항구에 입항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의 행복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성 필립보 네리 신부에 매료됨

이미 국제적으로 저명한 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뉴먼 성인은 1846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포교성성 대학교(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의 평범한 신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여기에 있는 것이 정말 기쁘다”라고 했다. “꿈 같기도 하고, 너무나 평화롭고, 안전하며, 처음부터 여기에 속해 있었던 것처럼 행복합니다.” 1847년 5월 30일 사제서품을 통해 그의 성소는 완성된다. 이 기간 동안 뉴먼 성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로마에 “입양된” 성 필립보 네리 신부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복자 비오 9세 교황이 뉴먼 성인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고, 성인은 그곳에 자신의 기쁨에 찬 마음을 공유했던 필립보 네리 성인의 이름을 딴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했다. 그는 고국에서 가톨릭을 뿌리 내리기 위해 추진했던 다양한 활동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해 수년 간 겪어야 했던 여러 시련에도 불구하고 기쁨에 찬 그의 마음은 변함없이 유지됐다. 그의 지성은 가혹한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가톨릭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훌륭한 글들을 끊임없이 집필했다. 1879년 레오 13세 교황은 성인을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그 소식을 듣고 뉴먼 성인은 “구름이 영원히 걷혔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성인은 1890년 8월 11일 선종할 때까지 평소와 같은 열정으로 사도직 활동을 이어갔다. 성인은 자신의 무덤에 이름과 89년의 비범한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몇 마디의 글귀, 곧 ‘그림자와 형상에서 진리로’(Ex umbris et imaginibus in Veritatem)를 새기게 했다.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0년 뉴먼 추기경을 복자품에 올리면서 그를 깊은 기도의 사람으로 기억했다. “사제 직무에 대한 깊고 인간적인 관점을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 보살핌으로 실천했습니다.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돌봤습니다.”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뉴먼 추기경을 성인품에 올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에서 뉴먼 추기경이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다”(Cor ad cor loquitur)를 그의 표어로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교황은 모든 변증법적 논쟁을 넘어 주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에서 우리의 마음으로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논리가 위대한 사상가였던 그를 이끌었고, 자기 자신과 주님과의 가장 깊은 만남의 장소는 독서나 묵상이 아니라, 살아 계시고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나누는 기도의 대화였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뉴먼 추기경은 미사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시고, 우리 삶의 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시며, 인간 안에 참된 평화를 베풀어 주시는 살아 계신 예수님의 성심을 발견했습니다.”


번역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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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8월 2025, 1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