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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7 Benozzo Gozzoli, Morte di santa Monica, 1464-65, affresco, San Gimignano, Chiesa di Sant’Agostino 2025.08.27 Benozzo Gozzoli, Morte di santa Monica, 1464-65, affresco, San Gimignano, Chiesa di Sant’Agostino 

모니카 성녀와 “마음의 학교”

8월 27일, 교회는 아우구스티노 성인 축일 전날에 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축일을 기념한다. 모니카 성녀는 아들에게 교회의 첫 번째 표상을 보여준 어머니였다. 정화받아야 할 인간이면서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였다.

로코 론차니 신부

바티칸 사도 문서고 관장

 

어머니, 신앙의 스승, 그리고 평화의 여인. 이 표현들은 모니카 성녀의 본질적인 면모를 잘 드러낸다. 이는 그녀의 아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자신의 저작을 통해 그려낸 모습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신학적, 영적 성찰은 자신이 체험한 삶, 특히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심어준 그리스도교 신앙 교육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저술에서 모니카 성녀를 처음 언급한 대목은 카시키아쿰에서의 행복에 관한 대화록인 『행복한 삶』(De beata vita)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저서에서 성녀 모니카는 참된 지혜의 표상으로 그려지며,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모든 것”의 공로를 어머니에게 돌린다(같은 책, 제1권,6). 실제로 오늘날 이탈리아 브리안차 지방 시골에서 성인은 세례로 이어지는 회심의 길을 걸었고, 금욕 생활의 소명을 받아들였으며, 복음적 이상을 품고 하느님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훗날 현재 알제리 지역인 히포 지역에서 사제가 되고 주교가 됐다.

『질서론』(De ordine)에서 성인은 어머니가 자신의 회심에 끼친 영향을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흔들림 없이 믿고 단언합니다. 어머니, 당신의 기도로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것은 진리 추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앞세우지 않고, 바라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마음입니다”(같은 책, 제2권,20,52).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고백록』을 비롯한 다른 여러 저서에서 어머니를 끊임없이 언급했다. 『인내의 은총에 대하여』(De dono perseverantiae)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고백록」에서 저는 저의 회심 이야기를 들여주었습니다. (...) 제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께서 신앙으로 매일 흘리신 눈물 덕분에 제가 죽지 않을 수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같은 책, 20,53).

모니카 성녀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신앙의 모범이었다. 성녀는 사랑과 성경 말씀에 귀 기울이며(『질서론』 제1권,11,32; 제2권,17,46), 공동체 기도에서 자양분을 얻었다. “당신 제단의 봉헌에 하루도 빠짐이 없고 날이면 날마다 조석으로 두 번씩 당신 성당으로, 그것도 (…) 당신 강론으로 당신을 듣고, 그의 기도로는 당신이 그를 들어주시기 위하여 꼭꼭 나아가던 그가 아니었나이까?”(『고백록』 제5권,9,17).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어머니가 간직한 희망의 덕을 찬미하고, 어머니의 신앙을 칭송한다(같은 책, 제1권,11,17). 바로 이 어머니가 아들의 마음 깊숙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향한 사랑을 심어줬다. “내가 아직 어미의 젖을 먹을 때부터 여리고 여린 내 마음이 정성스레 마시고 속 깊이 새겨두어서 이 이름이 없는 것이면 제아무리 박학·세련·진실된 것이라도 나를 오롯이 심취시킬 수는 없었습니다”(같은 책, 제3권,4,8).

『고백록』 제9권은 하느님의 섭리로 가득한 모니카 성녀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임종까지 단계별로 그려낸다. “그를 내신 분은 당신이시며 그의 아비나 어미조차 자기네한테서 누가 나올지를 알지 못한 것이니이다”(같은 책, 제9권,8,17). “이와 같이 정숙하고 검소한 교육을 받은 그는 양친을 말미암아 당신을 섬기기보다 당신을 말미암아 양친을 섬겼습니다”(같은 책, 제9권,9,1). 화를 잘 내고 성격이 거칠며 불륜까지 저지른 남편 파트리치오와의 관계에서도 하느님께서 계시고 역사하셨다. “그녀는 남편이 바르지 못할 때에도 참아내며, 그 일로 남편과 시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이 위에 당신 자비가 내리기를 바라 당신을 믿음으로써 깨끗해지는 날을 기다렸습니다”(같은 책, 제9권,9,19).

아우구스티노는 성인은 어머니가 불화 속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역량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께서 마음의 학교에서 가르치시는 은밀한 스승이신 까닭이었습니다”(같은 책, 제9권,9,19). 오랜 사목 기간 분열과 이단으로 상처받은 교회 공동체를 치유하려 온 힘을 다한 아우구스티노 성인 자신에게도 이 고백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모든 공로를 오로지 하느님께 돌렸다. 하느님께서 “마음의 학교”에서 제자들을 깨우쳐 주시고 성령을 통해 참된 일치를 이루는 온유한 사랑을 부어주시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모니카 성녀의 마지막 날들을 회상하며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를 들려준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모니카 성녀에게도 아들에 대한 꿈이 있었다. 아들이 출세하고 혼인해서 보는 것이었으나 그 무엇보다 간절했던 것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이 참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아들이 마침내 신앙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이미 영적으로 원숙해진 모니카 성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어했던 것은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보겠다고…”(같은 책, 제9권,10,26). 이제 더는 이 세상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모든 소망을 뛰어넘는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늘 남편 곁에 자신의 무덤을 마련하며 장례를 걱정하던 그녀가 이제 자녀들에게 당부한다. “내 몸뚱이야 어디다 묻든 그 일로 해서 조금도 걱정들 말거라. 한 가지만 너희한테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에 있든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 다오”(같은 책, 제9권,11,27). 이는 은총의 권능과 성인들의 통공을 몸소 체험한 한 소박한 여인이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하느님 은총의 찬란한 결실인 모니카 성녀는 아들에게 교회의 첫 번째 표상이었다. 정화받아야 하면서도 기도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였다. 어머니 모니카 성녀와 어머니 교회 모두에게 성경의 모범은 나인의 과부와 그녀의 눈물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를 설명하며 우리에게 그 의미를 일깨워준다. “그만치 내 비참을 미리 알고, 죽은 그러나 다시 살아날 자식을 슬퍼하며 마음의 널에 담아 당신께 바치는 것이었으니 홀어미의 자식에게 당신께서 ‘소년아,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루카 7,14)시면 곧 살아나 말문을 열고, 그러자 당신은 그를 제 어미에게 안겨주시기 위함이었나이다”(같은 책, 제6권,1,1). 그리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기도와 눈물로 인류 구원의 도구가 되는 어머니 교회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성찰한다. “죽어 있던 과부의 아들에게 무슨 믿음이 있었겠습니까? 죽어 있었으니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되살린 것은 어머니의 신앙이었습니다”(『자유의지론』, 제3권,23,67).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를 기억하며, 우리도 그의 이 고백을 함께 나눌 수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시여, 당신께서 신자들의 마음속으로 들여보내시는 당신의 은혜, 그로 좇아 신묘한 결과들이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은근히 기뻐하고 당신께 감사드리고 있었습니다”(『고백록』, 제9권,11,28). 우리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기뻐하자.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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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8월 2025,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