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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rnata Mondiale dell'Alimentazione alla FAO Giornata Mondiale dell'Alimentazione alla FAO  (ANSA)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총회에 보낸 교황 담화

레오 14세 교황은 6월 30일 제44차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총회 참석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교황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라는 재앙 앞에 쓰러져 가고 있다며 “시민들이 빈곤으로 야위어 갈 때 정치 권력자들은 부패와 특권으로 배를 불린다”고 강력히 질타했다. 아울러 교황은 세계의 빈곤과 굶주림을 근절하는 데 쓰여야 할 소중한 재정 자원과 혁신 기술이 “무기 제조와 거래를 위해 전용되고” 있는 현실을 신랄하게 규탄했다.

제44차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총회 참석자들에게 보낸 교황 담화

2025년 6월 28일-7월 4일, 로마

 

존경하는 유엔식량농업기구 총회 의장님,
존경하는 유엔식량농업기구 사무총장님,
친애하는 추기경 여러분,
신사숙녀 여러분,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이한 유엔식량농업기구(이하 FAO)에 처음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FAO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제44차 정기총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께, 특히 취동위 사무총장께 진심 어린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인 식량 불안과 영양실조 문제에 맞서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FAO가 날마다 기울이는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교회는 세계 기아라는 부끄러움을 끝내려는 모든 노력을 적극 격려합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바와 같이,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든 수많은 군중을 보시고 무엇보다 먼저 그들에게 양식을 주는 일에 마음을 쓰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 문제를 맡기시며 그들이 가져온 빵과 물고기를 축복하여 풍성하게 하신 그분의 사랑 어린 마음을, 교회 또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요한 6,1-13 참조). 하지만 우리가 흔히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이라 부르는 이 이야기를 깊이 묵상할 때(마태 14,13-21; 마르 6,30-44; 루카 9,12-17; 요한 6,1-13 참조),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참된 기적은 굶주림을 이기는 비결이 탐욕스럽게 쌓아두기보다 서로 나누는 데 있음을 깨우쳐 주시려는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잊어버린 진리일지도 모릅니다. 분명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세계 식량 안보는 여전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2030년까지 “제로 헝거”(Zero Hunger)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점점 더 요원해 보입니다. 이는 1945년 범정부 기구인 FAO를 세운 숭고한 사명을 아직도 완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혹독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절박한 필요를 채우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혼자서는 이 필요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압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나라에서 기아와 영양실조가 끊이지 않는 비극적 현실은, 지구가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릴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고 국제사회가 식량 안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곳곳의 가난한 이들이 매일 먹을 양식조차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서 더욱 비통하고 부끄러운 일이 됩니다.

한편, 오늘날 우리는 기아를 전쟁의 무기로 악용하는 끔찍한 현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굶어 죽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전쟁을 벌이는 가장 ‘값싼’ 방식입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대부분의 분쟁에서 정규군 대신 변변한 장비도 없이 무장한 민간인 집단들이 싸울 때, 힘없는 민중 전체를 지배하려는 세력들은 농토를 불태우고 가축을 약탈하며 구호물자를 차단하는 수법을 점점 더 자주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런 형태의 분쟁에서는 상수도 시설과 교통로가 첫 번째 공격 목표가 됩니다. 농민들은 폭력의 위협 속에서 자신들이 기른 농산물을 팔 수도 없고, 물가는 치솟기만 합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라는 재앙 앞에 쓰러져 목숨을 잃어가는 동안, 시민들이 빈곤으로 야위어가는 동안 정치 권력자들은 부패와 특권으로 배를 불립니다. 그러므로 이제 국제사회는 이런 횡포를 막고 책임자들과 가해자들을 기소할 수 있는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공통된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처럼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한 해결책을 계속 미루기만 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궁핍한 이들의 고통과 절망만 더욱 깊어져 갈 뿐, 앞으로 나아갈 길은 더욱 험난하고 복잡해질 것입니다. 지금은 말에서 실천으로 옮겨야 할 절체절명의 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희망과 평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중심에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허한 구호와 거짓 공약의 시대를 끝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지금 현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불의와 불평등의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될 미래 세대 앞에서 어떻게 변명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혼란과 무력 충돌, 경제적 불안정은 식량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입니다. 이런 상황들이 인도적 지원을 가로막고 지역 농업 생산을 파괴하여, 사람들에게서 식량에 대한 접근권뿐만 아니라 기회가 넘치는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마저 빼앗아 갑니다. 오랜 세월 이기심과 안일함이 남긴 상처와 균열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오가 될 것입니다. 더욱이 평화와 안정 없이는 회복력 있는 농식품 체계를 구축할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을 위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량 공급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진정한 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해집니다. 관련 당사자들이 단순히 서로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손을 맞잡고 함께 행동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분명 앞길에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인간다운 마음과 형제적 사랑을 품고 있다면 반드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식량 체계는 기후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기후변화 또한 식량 체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자연재해와 생물 다양성 파괴가 불러온 사회적 불의를 바로잡아 환경과 인간을 중심에 둔 정의로운 생태 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원주민을 비롯한 소외받는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를 보호하려면, 정부와 공공기관 그리고 민간단체, 국가기관과 지역기관이 힘을 모아 자원을 총동원하여 생물 다양성과 토양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단호하고 체계적인 기후행동 없이는 늘어나는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농식품 체계를 결코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식량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식량 체계가 지속 가능하며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강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피조물을 무분별하게 착취하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이겨내고, 환경과 자원을 소중히 가꾸고 지켜나가려는 우리의 노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량 안보를 확실히 보장하고 모든 이를 위한 충분하고 건강한 영양 공급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대 정신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식량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새롭게 개혁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위기와 갈등으로 인해 국제관계가 극도로 양극화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계의 빈곤과 굶주림을 뿌리 뽑는 데 쓰여야 할 소중한 재정 자원과 혁신 기술이 무기 제조와 거래를 위해 전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의심스러운 이념들이 부추겨지고 동시에 인간관계가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결과 공동체적 친교는 훼손되고 형제적 사랑과 사회적 우애는 점점 멀어져 갑니다.

우리가 평화의 장인이 되어 이런 뜻으로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노력은 소수가 아닌 모든 이에게 이롭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소수라는 것도 언제나 같은 기득권층일 뿐입니다. 굶주림과 전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이해되는 참된 평화와 발전을 보장하려면, 진지하고 장기적인 안목에 뿌리를 둔 구체적인 행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확고한 정치적 의지를 갖고 공허한 말잔치는 한쪽에 제쳐두고서 “공동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상호 협력과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대립을 해소해 나가야” 합니다(「교황청 주재 외교단 신년 연설」, 2023년 1월 9일 참조).

신사숙녀 여러분, 이 숭고한 사명을 실현해 나가는 데 있어서 교황청은 언제나 민족들 사이의 화해를 위해 봉사하고 인류 대가족의 공동선을 위해 협력하는 일에 지치지 않을 것임을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특히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받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는 연대 실천을 삶의 표징으로 삼아야 할 이들의 무관심 때문에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외딴 곳에 사는 주민들을 각별히 제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희망을 품고서 저는 가난으로 인해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 온 세상 모든 이의 목소리가 되어 전능하신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소중한 사업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가장 약한 이들과 온 인류에게 참된 도움이 되기를 빕니다.

 

2025년 6월 30일, 바티칸
교황 레오 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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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servatore Romano, Anno CLXV n. 149, lunedì 30 giugno 2025, p. 5.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Anno 165 n. 149, 2025년 6월 30일, 5쪽.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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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7월 2025,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