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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Papa ai seminaristi, date voce all'indignazione Il Papa ai seminaristi, date voce all'indignazione  (ANSA)

[연설] 교황,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선교하는 교회의 봉사자가 되십시오”

레오 14세 교황은 6월 24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신학생들의 희년’ 행사를 맞아 로마에 모인 미래의 사제들을 만났다. 교황은 갈등과 자기중심주의, 권력욕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희망의 증거자”이자 “온유하고 강한” 복음의 선포자가 되기 위해 기도하며 식별력을 갖추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보잘것없는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삶을 “사랑의 선물”이 되게 하라고 당부했다.

‘신학생들의 희년’을 맞아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황의 묵상
2025년 6월 24일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존경하는 추기경님들, 주교님들, 양성 책임자들, 그리고 특히 신학생 여러분, 모두 안녕하세요!

여러분을 만나니 참으로 기쁩니다. 신학생과 양성 책임자 여러분, 이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기쁨과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지닌 그 생명력으로 교회 안에 희망의 불꽃을 지펴주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은 ‘순례자’일 뿐만 아니라 ‘희망의 증거자’이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이 시대에 사제 성소라는 매력적인 모험에 몸을 맡긴 여러분이야말로 저와 모든 이에게 희망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구원하는 말씀을 온유하면서도 힘 있게 선포하는 이, 열린 교회와 나아가는 선교 교회의 봉사자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였습니다.

스페인어로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주님을 따르고, 제자가 되고, 신학교에 들어가라는 주님의 초대를 용감하게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을 부르시는 그리스도께 겸손과 용기로 “예”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말씀드린 “저 여기 있습니다”라는 응답은 교회의 삶 안에 싹을 틔우고, 식별과 양성의 필수적인 여정과 함께 자라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여러분이 당신과 우정을 나누며, 산으로 불러 곁에 두신 제자들과도 우정을 나누는 삶을 살도록 부르고 계십니다(마르 3,13 참조). 이 우정의 체험은 사제품을 받은 뒤에도 끊임없이 자라나며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도 버려질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 받아들여야 하고, 밀알의 논리 안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 걸림돌이 아니라 “다리”가 되는, 행복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심을 닮은 목자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은 커지시고 우리는 작아져야 합니다.[1]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과 관련해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2] 바로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 시기, 곧 양성과 식별의 시기에 여러분 여정 전체의 “원동력”이자 중심에 눈길을 돌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신학교는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는 이들의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갈등과 자기중심주의가 깊이 스며든 사회 문화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3]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셨듯이,[4]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성심으로 사랑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el corazón de Jesús)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의 기술을 익히려면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은 하느님께서 당신 목소리를 들려주시고 가장 깊은 결정을 내리는 곳이지만, 동시에 긴장과 갈등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마르 7,14-23 참조). 인간성 전체가 복음의 향기를 풍기도록 회개가 이루어져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작업은 바로 내면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발자취를 다시 발견할 수 있는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권고를 깊이 새기십시오. 마음속 깊이 내려간다는 것이 때로는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상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돌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도움받는 것을 마다하지도 마십시오. 바로 그 상처에서 고통받는 이들 곁에 머물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삶 없이는 영성생활도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그곳, 마음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마음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내면 작업에는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우는 훈련도 포함됩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의 특징인 빠르고 즉각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삶의 방향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감정을 헤아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을 아는 법을 배운다면, 점점 더 진실한 사람이 될 것이고 가면을 쓸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내면으로 이끄는 특별한 길은 바로 기도입니다. 지나치게 서로 연결된 이 시대에서 우리는 침묵과 고독을 체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주님과 만나지 못하면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알 수도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주 성령께 기도하여, 자연과 예술, 시와 문학,[5] 음악과 일반 학문[6]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깨달을 수 있는 온순한 마음을 여러분 안에 빚어가기를 권고합니다. 신학 공부에 온 마음을 다하는 가운데서도 열린 마음과 열린 정신으로 인공지능과 ‘소셜 미디어’[7]의 새로운 도전 같은 문화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십시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종종 침묵에 파묻혀 있는 보잘것없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 억눌린 이들과 많은 이들, 특히 삶의 의미를 찾는 젊은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매일 침묵과 묵상, 기도 시간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돌보면, 식별의 기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중요한 작업입니다. 곧, 식별하는 법을 배우는 작업입니다. 젊을 때는 수많은 열망과 꿈, 많은 야망을 마음에 품게 됩니다. 마음이 종종 복잡해지고 혼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동정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 내면이 마음을 지키고 묵상할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바와 같이(2,19.51 참조) 쉰발레인(synballein, 마음속에 간직하다)의 역량, 곧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량이 필요합니다.[8] 피상적인 것을 경계하고, 삶의 조각들을 기도와 묵상 안에서 하나로 모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내 여정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십시오(마태 11,29 참조). 사도 바오로의 모범을 따라(필리 2,5 이하 참조), 그리스도께서 품으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여 인간적 성숙, 특히 정서적 성숙과 관계의 성숙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인간적 성숙에 힘을 쏟고 모든 가식과 위선을 물리치는 것은 중요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슬픔과 두려움, 괴로움과 분노에도 이름을 붙이고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고, 이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관계 안으로 가져오십시오. 위기와 한계, 연약함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총과 파스카 체험을 위한 기회입니다.

때때로 배은망덕과 권력욕이 넘쳐나고, 많은 경우 버리고 내치는 논리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감사와 무상성, 기쁨과 환희, 예수 성심의 온유한 사랑과 자비를 증거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사제품을 받기 전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인간성에 “기름을 부어주시도록” 내어 맡기면서, 환대와 친밀함, 너그럽고 사심없는 봉사의 삶을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성심은 끝없는 연민으로 약동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착한 사마리아인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이 주님의 연민이 군중을 위해 말씀이신 주님의 빵을 떼어 나누어 주도록 이끌고(마르 6,30-44 참조),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먹을 양식으로 내어주신 다락방과 십자가의 몸짓을 미리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다시 말해 여러분의 생명을 사랑의 선물로 만들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신학생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어머니 교회의 지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각 지역의 필요에 따라 성직자 양성에 더 알맞은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이런 과업에서 여러분의 몫은 무엇입니까? 결코 소극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며, 그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제 생활에 열정을 품고 현재를 살아가며 예언자적 마음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이 여러분 각자로 하여금 주님과의 인격적인 대화를 더욱 깊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 대화에서 주님께 그리스도의 감정과 당신 성심의 감정에 더욱 동화되게 해 달라고 청하십시오. 주님의 성심은 여러분과 온 인류를 위한 사랑으로 약동하고 있습니다. 좋은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저의 축복으로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사랑하는 신학생 여러분,

신학생들의 희년을 맞아 오늘 아침 저는, 양성 여정에서 여러분을 동반하는 사제들과 더불어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쁩니다. 여러분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교회에서 왔고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인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에페 4,4 참조). 오늘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서, 그분의 후계자인 저와 함께 여러분은 세례 때 고백했던 신앙을 장엄하게 새롭게 선언합니다. 이 신경이야말로 여러분이 사제품을 받는 날 기쁘게 말하게 될 “저 여기 있습니다” 하는 응답을 싹틔울 뿌리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당신의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께서 그 일을 완성까지 이끄시길 빕니다.
[라틴어로 신경을 바친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이 희년에 당신 교회에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저희의 선한 결심을 받아들이시며 복음의 참된 증거자가 되고자 저희 삶을 당신께 바치려는 저희 소망을 들어주소서. 성령의 은총으로 저희 발걸음을 이끄시어 천상 예루살렘에서 당신의 얼굴을 뵈올 복된 희망에 이르게 하소서. 그곳에서 당신의 나라는 충만하고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모든 것이 당신의 아드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옵나이다.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토록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강복

 

여러분 모두에게 큰 축하를 드리며 희망에 찬 순례 여정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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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 43항 참조).
[2]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 (2024년 10월 24일)
[3] 같은 곳, 17항 참조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22항 참조.
[5] 프란치스코 교황, 서한, 「양성에서 문학의 역할」, 2024년 7월 17일 참조.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62항.
[7] 교황청 성직자성(현 성직자부),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사제 성소의 선물」(Ratio Fundamentalis Institutionis Sacerdotalis, Il dono della vocazione presbiterale), 2016년 12월 8일, 97항.
[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19항 참조.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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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6월 2025,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