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 주재 외교단에게 행한 교황 레오 14세 연설
공경하올 대사님들과 외교관님들,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특유의 친절함과, 헌신, 지칠 줄 모르게 업무를 수행해 오신 것과 또 여러분 모두의 이름으로 따스한 인사를 해주신 키프로스 공화국 대사이자 외교단 단장인 조지 풀리데스 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대사님의 품격은 성좌 주재 대사로서 근무하는 동안 만났던 모든 전임 교황들, 특히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존경을 한 몸에 받도록 했습니다.
또한 저의 당선 이후 보내주신 많은 축하 메시지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에 대한 감사를 여러분에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메시지 중에는 성좌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국가에서 보내온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이는 상호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존중의 중요한 증거입니다.
우리 대화에 있어서 저는, 항상 가족이라는 의식을 첫 자리를 차지했으면 합니다. 실제로 외교 공동체는 삶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가족 공동체에 혼을 불어넣는 인간적, 영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실상 민족들의 가족을 대표합니다. 교황청 외교는 바로 교회의 가톨릭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좌는 특권을 추구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복음적 사명을 강화하는 것을 추구하도록 자신에게 강력히 요구하는 사목적 긴급성에 따라서 그 활동을 이어 갑니다. 성좌는 모든 형태의 무관심과 싸우며, 존경하는 전임 교황의 끊임없는 노력에서 볼 수 있듯이 양심에 계속해서 호소하며 항상 가난한 자, 궁핍한 자, 소외된 자의 외침과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창조물을 보호하는데에서 인공 지능에 이르는 현대의 도전들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참석해 주신 것은 여러분의 나라가 사도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구체적 표징임을 넘어서서, 저에게는 하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의 현존은 진리와 정의, 평화를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이 땅의 모든 개인과 민족에게 다가서서 감싸안는 교회의 열망과 저의 열망을 새롭게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떤 의미에서 북미와 남미, 유럽에 걸쳐서 성장한 제 삶의 경험 자체는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만나기 위하여서는 국경을 초월해야 한다는 이런 열망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저는 국무원의 지속적이고 인내로운 활동을 통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국가에 대한 이해와 대화를 굳건하게 될 것을 원합니다. 사실 저는 여러분의 많은 국가들을, 제 생애에 있어서, 특히 아우구스티노회 총장 시절 이미 방문했던 은총을 받았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섭리가 여러분 국가의 실제들과 만나는 기회을 저에게 허락하실 것이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형제 자매들을 신앙 안에서 굳건하게 하고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들과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는 것을 제가 받아들이도록 섭리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우리 대화에서 세 가지 핵심 단어들을 신중히 고려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단어들은 교회 선교 활동의 기둥이자 성좌가 추구하는 외교 업무의 기둥들을 형성하는 것들입니다.
첫 번째 단어는 평화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경우 이 단어를 부정적인 단어, 곧 전쟁이나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로]상반된다는 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고 이것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집과 일터, 사회 안에서 너무나 자주 지속적인 ‘갈등상태’에서 살도록 우리를 강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평화란 것은 단순한 목표점, 이 분쟁과 저 분쟁 사이의 휴식의 순간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화를 위한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은 항상 현존하기 때문인데 이는 [타고 남은] 잿 속에 있다가 살아날 수 있는 화로불처럼 어떤 순간에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적 경험에서와 같이 그리스도교적 전망에서 평화는 무엇보다도 일종의 선물, 곧 그리스도의 첫 번째 선물입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 14:27). 그러나 평화는 모두가 수고해야해야 하는 적극적성을 띈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어떤 문화와 어떤 종교에 속한 것과는 상관없이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선물입니다. 평화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수고를 요구합니다. 평화는 마음 안에서부터 교만과 보복의 마음을 뿌리채 뽑아버리면서 적합한 언어 표현을 고려하는 가운데 마음 속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기들로만이 아니라 말로도 상처를 주고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종교들, 그리고 종교 간 대화가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근본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모든 국가에서 종교자유가 충만하게 존종되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종교적 경험은 인간의 근본적 측면이기 때문에 이것을 간과하고는, 비록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평화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필요한 마음의 정화를 완성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행하도록 부름받은 이 작업에서부터 온갖 분쟁과 정복하고 싶어하는 온갖 파괴적인 의지의 전조들이 뿌리뽑아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충돌하기 보다는 만나고자하는 열망을 갖고 대화하려는 솔직한 의지를 요구합니다. 이런 전망하에서 국제 공동체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들을 방지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갈망했고 생각했던 국제 기구들과 다자 외교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죽음과 파괴의 도구를 생산하는 것을 중단할 의지가 요구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지난 ‘로마와 세계에(Urbi et Orbi)’ 메시지에서 상기시키셨듯이, "진정한 무장해제 없이는 어떤 평화도 불가능하며, 모든 민족이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요구가 재무장 경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1. 교황 프란치스코, ‘로마와 세계에(Urbi et Orbi)’ 메시지, 2025년 4월 20일]
두 번째 단어는 정의입니다. 평화를 지속한다는 것은 정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이미 제가 살짝 언급했듯이, 저는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라는 저 위대한 첫 번째 사회 회칙의 교황이신 레오 13세를 특별히 생각하며 제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격변의 시대에 성좌는 수 많은 불균형과 부당한 노동 조건으로 유인하는 불의, 그리고 지속적으로 점점 더 분열되고 갈등이 심해지는 사회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엄청난 부와 극도의 빈곤이 대륙과 국가, 또한 각 사회 내부 안에서도 깊게 파헤쳐진 고랑, 곧 범세계적 불평등을 회복할 방법을 취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시민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부 지도자들의 임무입니다. 이것은 특히 가정에 투자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가정은 남자와 여자의 고정된 결합 위에 기초한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작지만 진정한 사회이며 모든 시민 사회보다 선행하는 사회입니다.”[2. 교황 레오 13세,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년 5월 15일, 9항]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태아부터 노인, 병자부터 실업자, 시민권자와 이주민 등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특히 가장 연약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인간 존엄성이 보호되는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데 있어서 면제될 수 없습니다.
제 [인생]역사 자체가 조국을 떠나 이주한 이주민의 출신 시민자의 역사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 여정에서 건강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으며 혹은 직업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고향에 살 수도 있고 타지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의 존엄성은 항상 동일한 것이며 이 존엄성은 하느님이 원하셨고 하느님이 사랑하신 피조물의 인간 존엄성인 것입니다.
세 번째 단어는 진리입니다. 국제 사회 안에서 역시 진리 없이는 진정으로 평화로운 관계가 구축될 수 없습니다. 모호하고 양가적인 의미의 단어들이 지배하는 곳과 실재를 변형시켜서 이해하여 아무런 감독없이 우위성을 점유하는 가상세계에서는 진정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소통의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전제들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필요할 때, 처음에는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솔직한 말투를 사용하면서 교회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리을 말해야 하는 책임에서 결코 면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애덕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진리는 근본적으로 항상 모든 남성과 여성의 생명과 선익에 대하여 걱정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진리는 추상적이고 살로 변화되지 않는 원칙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 공동체 한가운데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그 인격 자체와의 만남입니다. 이렇게 진리는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시대의 도전들, 이민문제, 인공지능의 윤리적 사용, 존중되어야 할 우리 지구의 보존과 같은 우리 시대의 도전들을 우리가 보다 나은 힘으로 대처하자는 합의에 이르도록 합니다. 이 도전들은 모든 이들의 노력과 협력을 요구하는 도전들입니다. 왜냐허면 그 누구도 홀로 이 도전들을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대사 여러분,
저의 직무는 특별한 방식으로 희망에 봉헌된, 이 희년의 한 가운데에서 시작합니다. 희년은 회개와 갱신의 시기입니다. 특별히 희년은 다툼을 뒤로하는 기회이고 희망으로 고무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기 위한 기회입니다. 이 새로운 발걸음은 각자의 책임과 각자의 고유한 생각에 따라 진리와 정의와 평화 안에서 참된 인류를 실현할 수 있는 세계를 함께 수고하면서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저는 이런 세상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성지에서처럼 가장 슬픈 고통을 겪고 있는 곳부터 시작하여 모든 곳에서 실현되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 국가들과 성좌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기 위하여 행하고 계신 여러분의 모든 일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들, 여러분의 국민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번역 한영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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