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의 십자가의 길... 세상의 회심을 위한 교회의 기도
Tiziana Campisi
성금요일 밤, 콜로세움은 수천 개의 작은 불빛으로 밝게 빛났다.
로마 중심부에 모인 약 2만 명의 신자들이 든 촛불이었다. 이들은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지극한 희생인 “주님 수난”을 기억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기원후 70년경 로마 제국의 아홉 번째 황제였던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가 오락과 공연을 위해 건설한 이 원형경기장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가 거행됐다. 16세기부터 이곳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순교 장소였다. 이러한 까닭에 1750년 베네딕토 14세 교황은 주님의 수난과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봉헌했고, 예수님께서 골고타로 향하는 여정의 이야기를 담은 14처의 십자가의 길 벽감을 세웠다.
일상 속을 지나는 골고타의 길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십자가의 길 묵상문을 직접 작성한 교황은 로마교구 총대리 발다사레 레이나 추기경에게 전 세계에 중계되는 이 예식의 집전자로 위임했다. 이 자리에는 로베르토 괄티에리 로마 시장도 참석했다. 레이나 추기경은 십자가의 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골고타로 가는 길은 우리 일상의 거리 한가운데를 지나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주님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레이나 추기경은 교황의 묵상문을 인용하며 “그러나 우리의 선택 속에서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알아뵙거나 그분의 눈과 마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돌아설 수 있습니다.” 교황의 묵상문은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과 「바티칸 뉴스」의 편집자 겸 해설자 오라지오 코클리테, 배우 비토리아 벨베데레,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RAI) 방송국 언론인 바바라 카포니가 대독했다. 마르코스 파반 몬시뇰이 지휘하는 시스티나 성당 합창단의 성가가 예식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방향 전환의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십자가의 길은 깊은 기도 분위기 속에서 “방향을 바꾸라”는 권고로 시작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을 계산하기에 헌신과 사랑의 나눔에 대가를 요구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눈길을 신뢰한다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모든 것이 다시 꽃피우게 됩니다. 파벌로 나뉘고 분쟁이 극심한 도시가 화해를 향해 나아가고, 메마른 종교심은 하느님 약속의 풍요로움을 다시 발견하며, 돌같이 굳은 마음이 살로 된 마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자원봉사자, 수도자, 이주민이 짊어진 십자가
콜로세움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십자가를 번갈아 이어받았다. 레이나 추기경은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와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에서 십자가를 이어받았다. 각 처의 주제와 연관된 이들이 십자가를 받았다.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청년들이 십자가를 들었다. 교황은 청년들에게 이기심과 무관심을 이겨내고 인생에서 책임을 다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첫 번째로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카리타스의 몇몇 대표들이 십자가를 들었다. 오늘날 경제가 흔히 배척하고 짓밟는 약자들을 하느님께서는 보살피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한 가족이 등장했다. 이 장면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만남을 묵상하며 루카복음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에서는 루르드 성모 성지와 국제 성지로의 병자 수송을 위한 이탈리아 전국연합 ‘우니탈시’(Unitalsi) 자원봉사자들이 행렬했다. 이들은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고통받는 이들의 십자가를 나눠졌다.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에서는 수도자들이 십자가를 들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고 관상하여 그분 사랑을 받아 다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다.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교육자들이 수난의 십자가를 들었다. 교황이 강조했듯이 인간 성장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다.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고 각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방향을 바꿔 마침내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다.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자신들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기도와 교회 봉사에 헌신하는 미망인 공동체 ‘오르도 비두아룸’(Ordo Viduarum) 소속 축성생활자들이 십자가를 이어받았다. 교황은 눈물에 대해 언급하면서,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나는 눈물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회심의 눈물과 진실된 눈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고해사제들이 십자가를 들었다. 이때 바리사이인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만나신 죄 많은 여인의 이야기가 언급됐다. 그녀가 많이 사랑했기에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많은 죄를 용서하셨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십자가를 들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 역사의 상처와 연약함을 짊어지셨음을 상기시켰다.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희년 자원봉사자들이 나왔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빚을 탕감하고 화해를 이루며, 예수님이 진정한 희년이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에서는 십자가가 이주민들의 손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우리가 때로 외면하는 형제들로, 그들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주님의 상처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에서는 의료 종사자들이 십자가를 들었다. 교황은 몸에 대한 돌봄과 가장 약한 이들을 향한 온유한 사랑을 생각해 보도록 초대했다.
그리스도께서 몸 굽히시고 하느님께서 빚으시는 흙
각 묵상 후에는 짧은 기도가 이어졌다. 제1처에서는 판단받는 이들, 편견, 경직성, 용기 부족 앞에서 인간의 마음이 열리기를 그리스도께 간청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짐을 짊어지셨다면, 우리는 특히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할 힘이 없다고 느낄 때나 책임을 회피하려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때 하느님께 피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청해야 한다. 골고타를 향한 그리스도의 발걸음은 우리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하늘이 이 땅에 내려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넘어진 사람은 패배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넘어지셨고, 우리에게 “인간 삶의 모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다. “하느님의 경제는 죽이지 않고, 버리지 않으며, 짓밟지 않습니다. 겸손하고 땅에 충실합니다.” 교황의 묵상은 깊은 감동을 준다.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에서는 “계산”과 “알고리즘”, “차가운 논리와 집요한 이윤 추구”가 팽배하다. “하지만 하느님의 경제는 이와 철저히 다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위선과 가면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몸을 굽히시고 하느님께서 빚으시는 흙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진흙임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상황이 변할 수 없어 보일 때,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기술이 우리에게 전능함의 환상으로 현혹할 때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형제애를 다시 엮어가기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에서 교황은 교회로 시야를 확장한다. 오늘날 아마도 교회는 “찢어진 옷”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는 절박한 요청이 된다. “우리의 형제애를 다시 엮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우리가 당신의 찢어진 옷이 되지 않게 하시고, 당신의 교회에 평화와 일치를 주소서.” 교황은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에서 다음과 같이 청했다.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저희가 부당한 법이나 결정에 의해 꼼짝할 수 없을 때, 진리와 정의를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반대를 받을 때, 저희가 절망에 빠질 유혹을 받을 때, 저희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책임을 맡을 수 있게 하시고, 우리를 대담하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당신은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저희를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저희에게는, 예수님 당신을 섬기는 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히고, 나그네를 환대하며, 병든 이와 감옥에 갇힌 이를 방문하고, 죽은 이를 묻어주는 것이 당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예수님의 수난을 되새긴 후 교황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을 인용하며 “회심의 은총”을 청했다. 교황은 하느님께 “마음의 어둠”을 밝혀주시기를 청했다. “주님,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굳건한 희망, 완전한 사랑과 깊은 겸손을 주소서. 주님, 당신의 참되고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지혜와 분별력을 주소서.”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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