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강론, 교황 “유해 미세먼지로 가득한 세상에서 재는 우리가 누구인지 일깨웁니다”
Benedetta Capelli
“자비로우신 아버지, 당신의 은총으로 저희의 회심 여정의 첫걸음을 함께해 주시어,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 행위가 우리 영혼의 깊은 쇄신에 부합하게 하소서.” 이 기도와 함께 교황청 내사원장 안젤로 데 도나티스 추기경이 교황을 대신해 로마 아벤티노 언덕에 위치한 산탄셀모 성당에서 사순시기 시작 예식을 집전했다. 이후 산탄셀모 성당에서 산타 사비나 대성당까지 참회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산타 사비나 대성당에서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고 재의 수요일 미사를 봉헌하며 사순시기 여정을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음으로 함께
‘성인 호칭 기도’를 바치는 가운데 산탄셀모 성당에서 산타 사비나 대성당까지 참회행렬이 이어졌다. 많은 신자들을 비롯해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산탄셀모 성당의 베네딕토회 수도자들, 산타 사비나 대성당의 도미니코회 신부들이 재의 수요일 미사에 함께했다. 도나티스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대독하기에 앞서 교황을 향한 마음을 전했다. 교황은 2월 14일부터 로마 제멜리 종합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재의 수요일 강론을 미리 마련했다.
“이 순간 우리는 교황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마음 깊이 느낍니다. 온 교회와 온 세상의 유익을 위해 기도와 고통을 봉헌하고 계시는 교황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약함 체험
교황 강론은 ‘나약함’과 ‘희망’이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이는 부활을 향한 사순시기의 핵심어들이다. 교황은 ‘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상기시켜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를 받기 위해 머리를 숙이는 행위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초대라고 말했다. “재는 우리 삶의 나약함과 보잘것없음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먼지이고, 먼지에서 창조됐으며, 먼지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울러 인생은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특히 삶 속에서 겪는 나약함을 통해 이를 깨닫게 됩니다. 온몸을 짓누르는 고단함, 직면할 수밖에 없는 약점들, 마음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 영혼을 태우는 실패의 상처, 안개처럼 흩어지는 우리 꿈의 덧없음,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허무함까지 말입니다. 이 모든 체험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참모습을 배워갑니다.”
유독한 미세먼지
질병은 우리에게 나약함을 생생히 체험하게 한다. 빈곤과 고통 또한 “때로는 우리와 우리 가족에게 예고 없이 들이닥치며” 나약함을 체험하게 한다. 교황은 우리 세상의 영적 환경을 오염시키는 “미세먼지”를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념적 대립, 지배 논리, 타인을 배제하는 낡은 정체성 이념의 부활, 자연 자원의 무분별한 착취, 모든 형태의 폭력, 나라들 사이의 전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행성 지구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평화로운 공존을 가로막는 ‘유해 미세먼지’입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 마음속에는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외면되는 죽음
우리의 나약함은 종종 ‘외면되는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교황은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논리 안에서 우리가 죽음을 애써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죽음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입니다. 죽음은 우리 삶의 덧없음과 찰나적 특성을 가리키는 표징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들과 우리의 시선을 흩트리기 위해 정교하게 고안된 인위적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재는 우리의 본질을 일깨워줍니다. 이는 우리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우리의 이기적 성향을 누그러뜨리며, 현실로 돌아오게 하고, 서로에게 더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게 합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하느님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나그네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눈에 소중한 ‘재’
교황은 재를 받을 때 머리를 숙여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동시에 “죽음의 심연에서 일어나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의 영광으로 이끄시는 분”을 바라보기 위해 머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사순시기 동안 살아내야 할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인간 조건의 나약함을 수동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고, 특히 죽음 앞에서는 슬픔과 절망에 빠져 어리석은 자들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교황은 우리가 비록 먼지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귀중한 먼지”라고 강조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영원한 생명을 향한 부르심으로 지으셨습니다.”
세상에 희망을 보여줍시다
교황은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다시 모시라고 초대했다. “바람에 흩어지는 재처럼 약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마침내 부활하신 분의 희망으로 밝혀지게 합시다.” 교황은 그리스도를 향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인간을 “세상을 위한 희망의 표징”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자선 활동이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서로의 필요를 함께 나누도록 초대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크 마리탱이 말한 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구걸하는 ‘하늘의 거지’입니다.” 교황은 단식을 통해 우리가 “사랑과 진리에 굶주려 있음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직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우리 사이의 사랑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배불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게 한다”고 말했다.
강론 후 ‘재의 축복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이 이어졌다.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인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도나티스 추기경의 머리 위에 재를 얹었으며, 이어 도나티스 추기경이 신자들의 머리 위에 재를 얹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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